1958년에 설립한 문성학원이 근대화 과정인 고도의 산업체제 속에서 급격한
경제 변화에 대처하기 위한 사업교육의 일환으로서 경제적 사무인력을 육성할 목적으로 설립되었다면 문일여고는 바른 인성을 갖춘 창의적 인간 육성이라는
교육 지표를 내걸고 미래 사회를 이끌어 갈 새로운 인재를 양성해야 하는 사명으로 설립되었다.
'미래 복지사회의 건설, 선진 조국의 창조' 라는 커다란 목표를 앞에 두고 볼 때 이를 달성하기 위해서는 실업교육만으로는 만족할 수 없을 것이다. 그것은 인문 교육과의 조화가 이루어져야 하기 때문이다.
사회 전반에 걸친 여성의 역할을 기대하는 경우, 현 사회구조적 현상은 여성에게 고등교육기관 복수를 전제로 하는 경향이 크다고 본다. 다시 말하면 중등교육기관으로서의 실업계 고교는 여성교육의 최종단계가 되는 의미가 강하므로 여성의 역할을 사회중추적 역할로 제고하려면 대학 진학이 불가피한 실정이다. 이에 대한 진학의 준비적 과정의 연장선상에 인문계 여고의 대한 설립의 필요성이 절실해졌다고 할 것이다.
지역적 특성을 보면, 본교가 수도 서울의 관문인 항구 인천에 특히 무한한 성장 가능성을 지닌 남동부 지역에 위치하게 된 것도 사회 발전에 이바지하려는 의지와 무관하지 않다. 설립 당시 인천교육의 현실을 보면 고등학교의 수가 부족하여 많은 중학교 졸업생들이 타시도로 진학해야 했고, 남동신흥 공업단지 조성 및 직할시청이 새 청사로 이전됨에 따라 급격히 증가하기 시작한 인구로 인하여 이 지역 학생들이 먼 거리로 통학해야 하는 어려움이 있었다. 이런 지역 시민의 요구도 충분히 해소시킨 것이다.
1986년 3월 1일 초대 교장으로 취임한 김영석 선생은 일찍이 대전사범 학교와 단국대학 사학과를 졸업하고 교육의 길을 걸어 왔다. 1963년에 중등학교 교감 자격을 취득했고 이어서 1979년에 중등학교 교장 자격을 취득했다.
40년 교육경력 중 28년간을 문성여상 교감과 인천고등기술학교 교장으로 봉직한 문성학원의 산 증인이기도 하다. 언제나 '학교는 내 집, 학생은 내 딸' 이라는 말을 신념처럼 가지고 생활하여 학교와 학생에 대한 사랑을 몸소 실철하였다.
(문용호 재단이사장으로부터 초대 교장 발령과 교기를 수여받고 있는 김영석 교장(1986.2.28))
본교의 교훈은 '성실(誠實)·근면(勤勉)·자율(自律)'로 정하였다. '성실'과 '근면;은 설립자의 건학 정신인 '성(誠)·근(勤)' 에 바탕을 둔 것이고, '자율(自律)' 은 현대사회적 측면을 고려하여 설정한 것이다. 산업사회의 발달로 말미암아 가족집단의 규모도 소위 핵가족 제도라는 소규모 집단으로 변모하고 있으며, 그것은 자녀의 수를 줄이게 되어 결과적으로 자녀에 대한 부모의 지나친 관심 및 자녀의 부모 의존도를 높이는 현상을 가져 왔다.
이에 따라 모든 행동영역에 대한 학생의 자율적 능력은 위축·소멸되어 개인은 물론, 사회의 미래에 대한 심각한 우려를 자아내게 하고 있다. 이와 같은 현실적 문제를 극복하려면 학교교육이 학생의 자율성 제고를 위하여 최대의 노력을 경주해야 한다는 입장에서, 교육의 자율 덕목은 그 의의를 굳힐 수 있을 것이다.
교표 제정에는 어려운 점이 많았다. 우선 문성학원의 이미지를 살려야 했고, 기존 문성여상과의 구분도 고려해야했으며, 교화(校花)인 목화(木花)의 뜻도 포함해야 했다.
목화의 다섯 입사귀와 목화 다래가 상징하는 것은 문성여자상업고등학교와 동일하게 한다는 결정을 봄으로써 그 윤곽을 잡게 되었다. 남은 문제는 <문일>의 표시와 바탕색의 조화방법이었다. 논의를 거듭 한 끝에 전 문성여상 김만옥 교장의 안이 채택되어 <문일>의 얼굴인 교표가 탄생되었다. 교표의 자세한 해설은 다음과 같다.
①다섯잎: 오보산 줄기 뻗듯 번영하는 문일의 기상
②흰색꽃: 아름답고 순결한 문일인의 마음
③녹색잎: 불멸의 신념으로 나아가는 문일의 정신
④옥색줄기: 희망이 가득한 약동하는 문일의 정기
⑤은색띠: 학문으로 앞서가는 일등 문일의 교명
본교 교기는 1986년 3월 개교에 즈음하여 설립자 문용호 이사장이 기증한 것이다. 그 모양은 12년 앞서 개교한 문성여자상업고등학교의 교기와 같게 하여 동일학원 산하의 일체감을 강조하였다.
가로 130cm, 세로 90cm의 남색 벨벳 바탕의 중앙 배치가 수놓아져 있으며, 그 밑으로 교명이 한글 가로쓰기로 은빛실에 의해 수놓였고, 네 변에는 황금색 실로 꼬아 만든 술이 들려 있어 우아하고, 화려한 모양을 더하고 있다.
남색바탕은 설립자의 건학이념인 '성(誠)·근(勤)' 의 정신과 이(理)와 지(智)를 존중하고 따르는 여성상(女性像)을 상징하고 있으며, 중앙에 늠름하게 자리한 배지는 육합(六合)에 온 정기가 뻗어가는 기상을 의미한다.
밝고 경쾌한 교가는 문덕진 교감(현 본교 교장)이 주관하여 제정하였다. 개교 준비작업이 한창이던 1985년 1월 문덕진 교감은 휘문고(䘗文高)의 동문이자 은사인 성기열(成耆說) 교수(문학박사, 당시 인하대 사범대학 학장)께 교가 작사를 의뢰하였다. 이에 성 교수가 전 3절로 가사를 마련함으로써 교가가 이루어졌는데 내용을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1절에서는 학교의 위치를 나타냄으로써 지형적 특성을 강조하였고,
2절에서는 여성교육의 측면에서 학교의 교육이념을 나타냈으며,
3절에서는 학교를 사랑하는 긍지를 심어 주기 위하여 전 세계를 대상으로 공헌하는 역군임을 강조하면서, 아울러 모교의 영원한 발전을 비는 찬양의 뜻을 담았다.
한편 작곡은 서울대 음대 작곡과의 이성재(李誠載) 교수(전 대한민국 작곡가협회 고문/휘문고졸)가 맡았는데, 그것은 작사자인 성기열 교수와 휘문 동문 관계에 있던 이진택 교수(이학박사, 당시인하대 이과대학장)의 소개로 문덕진 교감이 직접 이성재 교수를 방문하여 승낙을 얻음으로써 이루어 진 것이다. 이렇게 하여 6개월여 만인 1986년 6월 본교생에 처음으로 교가가 만수벌에 울려 퍼지게 되었다.
오세영 교수(현 서울대 교수)의 개교 축시
준공: 1985. 11
위치: 인천직할시 남동구 만수동 209
구조: 철근 콘크리트 슬라브 4층 건물 1동
건평: 총 947평 (28개 교실)
-1차로 신축한 개교 당시의 교사
준공: 1987. 12
구조: 철근 콘크리트 슬라브 6층 건물 1동
건평: 총 1,186평 (36개 교실)
교명은 처음에 '서원(瑞苑)'과 '문일(文一)' 두안이 거론되었다. 설립자 문용호 선생의 아호인 '서곡(瑞谷)' 에서 상서로울 '서(瑞)'자를 따고, 부인인 김만옥 여사(前 문성여상 교장)의 아호인 '혜원(惠苑)'에서 '원(苑)'자를 딴 '서원(瑞苑)'이 그 하나였다. 다음으로 <문성학원>의 글월 '문(文)' 자와, 항상 남보다 앞서 나아간다는 의미의 '일(一)'자로 이루어진 '문일(文一)'을 놓고 오랜 시간 숙의를 한 결과 '서원(瑞苑)' 이 주는 발음상의 뉘앙스가 염려된다고 하여 결국 '문일(文一)' 로 결정되었다.
교명 '문일' 이 가지고 있는 뜻을 자세히 설명하면, 문장으로서의 첫째, 문화의 전승자로서의 첫째, 인문과학 분야의 첫째 등 모든 것에 앞서간다는 뜻을 내포하고 있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여성으로서 부덕(婦德)을 갖춘 제일의 여성을 길러 내겠다는 의미가 중요하다 하겠다.